시에나에 깃발이 휘날리면…중세로 가는 '마법의 門' 이 열린다

입력 2019-07-21 15:47  

여행의 향기

열정적인 축제와 붉은 색채의 도시 이탈리아 시에나(Siena)



눈부신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 언덕에 있는 시에나는 축복받은 땅이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너머로 넓게 펼쳐진 포도밭 풍경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세 건축물과 한여름 태양의 열기처럼 뜨거운 축제가 열리는 강렬한 색채의 도시이기도 하다. 시에나는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소도시지만 축제가 열리는 여름이 오면 도시는 열정이 넘친다. 중세로 가는 마법의 문을 열고 시간을 거슬러 시에나로 여행을 떠나보자.

시에나의 중심 광장 역할을 하는 캄포 광장

시에나의 명소, 캄포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소도시답지 않게 수많은 사람이 넘쳐난다. 골목에 촘촘하게 들어선 오래된 건축물마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시에나 팔리오 축제(Palio di Siena)가 열리는 7월의 풍경이다. 건축미가 빼어난 캄포 광장은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과 더불어 이탈리아 3대 광장으로 불린다.

12세기에 세워진 캄포 광장은 오랜 시간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시에나의 중심 광장 역할을 해왔다. 캄포 광장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부채를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부채 모양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펼친 모습을 상징한다. 광장은 부챗살을 그려 넣은 것처럼 9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9개의 구역은 중세시대 시에나를 다스린 ‘9인 위원회’를 의미한다. 광장을 빙 둘러싼 건물 사이 사이에는 아홉 개의 길이 있어 어디서든 광장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시에나가 언덕을 따라 형성된 도시여서인지 캄포 광장도 경사져 있다. 광장은 예전에 투우장이기도 했고 사형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캄포 광장이 명성을 얻은 것은 세계적 경마 축제인 시에나 팔리오 축제의 중심 마당으로 활용되면서부터다.


광장 앞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푸블리코 궁전이 있다. 건물 한쪽에 파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종루가 아름답다. 종루 맞은편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을 딴 가이아 분수(Fonte Gaia)가 있다. 아담과 이브,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조각된 부조 장식이 아름다운 분수는 13세기부터 500년 동안 시민들이 마시던 샘물이었다. 지금의 분수에서 보는 장식은 14세기에 퀘르차(Quercia)가 조각한 작품을 모방해 만든 모조품이고, 진품은 시립박물관에 있다.

캄포 광장의 랜드마크처럼 우뚝 솟아 있는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은 현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푸블리코 궁전에서 가장 높이 솟아 오른 만자의 탑은 높이가 무려 102m나 된다. 시에나가 자치권을 확립한 것을 기념해 1297년 완성했는데 현재는 시에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푸블리코 궁전 2~3층에는 시립미술관이 있다. 시립미술관에는 일명 시에나파로 불리는 시모네 마르티니의 ‘성모마리아’와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선한 정부와 나쁜 정부’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중세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들의 프레스코화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울림을 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한 뒤 건물 한쪽에 우뚝 선 만자의 탑에 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5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중세도시의 풍경과 부채 모양의 캄포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과 어우러진 토스카나 전원의 풍경은 시에나파의 그림처럼 걸작이다.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기리는 시에나 팔리오 축제

시에나는 작은 도시지만 자치구가 무려 17개나 있다. 이 자치구를 콘트라다(Contrada)라고 한다. 콘트라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인지 거리 곳곳마다 콘트라다를 상징하는 깃발과 동물 조각으로 장식해 놓았다. 시에나 팔리오 축제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13세기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와 피렌체는 경쟁 관계였다. 1260년 시에나 사람들은 피렌체 군과 전투를 앞두고 성모 마리아에게 열쇠를 바치며 도시를 수호해달라고 기원했다. 전투에서 시에나 군은 승리를 거뒀고, 시민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기리는 말 경주를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에나 팔리오 축제는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 열린다. 팔리오는 시에나의 각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을 의미한다. 팔리오 경주는 안장 없는 말에 앉아 팔리오를 들고 광장 세 바퀴를 가장 빨리 도는 말이 우승을 차지한다.


시에나 사람들의 콘트라다에 대한 애정은 팔리오 축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팔리오(Palio)는 자줏빛 비단 망토를 뜻하는 중세 라틴어 팔리움(pallium)에서 유래했는데, 중세시대 황제나 영주들이 권력을 넘길 때 망토를 넘겨주는 것처럼 팔리오 축제에서 우승한 콘트라다에 승리의 깃발을 건넨다.

팔리오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조용한 중세도시가 축제를 즐기러 온 다양한 국적을 가진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다. 경주가 열리기 전부터 축제의 열기는 뜨겁다. 자신이 사는 콘트라다를 상징하는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중세기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골목을 행진한다. 스카프처럼 콘트라다 깃발을 목에 두른 수많은 사람이 행렬 뒤를 따른다.


거리를 꽉 메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그 속에 흥겨움이 가득하다. 축제의 열기가 넘실대는 캄포 광장에 들어서면 광장을 비추는 태양 아래서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경주가 열리는 트랙 주변, 광장을 둘러싼 건물, 상점의 창가와 발코니에 3만3000개의 관람석이 설치된다. 이 좌석은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예약이 끝나버린다. 관람석에 앉지 못한 2만8000여 명의 관중은 광장 한복판에 서서 경주를 구경한다. 미처 광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광장이 바라보이는 집과 건물의 옥상, 지붕에 올라 경주를 관람한다. 축제는 물론이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아버지 등에 무동을 탄 어린아이, 광장 한복판에서 키스를 나누는 연인, 패션의 나라답게 한껏 멋을 부린 노신사까지 영화 같은 축제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 시에나 사람들에게 팔리오 축제는 열정의 삶 자체다.

오후 4시, 만자의 탑에서 종이 울리면 경주에 참가하는 콘트라다의 기수들과 중세풍 복장을 한 행렬이 깃발을 앞세우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팔수, 북 치는 사람, 군악대, 팔리오를 덮은 말과 기수들이 행진을 준비한다. 5시가 되면 화려한 행진이 시작된다. 건물 높은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탈리아 전역에 축제 모습을 TV로 생중계한다.


7시30분, 드디어 경주가 시작됐다. 말이 달리자 광장의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깃발을 들고 돌진하듯 트랙을 도는 말과 기수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각 콘트라다의 깃발이 휘날리고, 말이 트랙을 세 바퀴 도는 90초 동안 울려 퍼지는 함성은 광장의 하늘을 뒤덮는다. 드라마 같은 풍경 속에서 우승자가 가려졌다. 우승자에게 팔리오가 건네지고 우승한 팀은 포도주를 마시며 거리를 행진한다. 패배한 팀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승자에서 선물을 바친다. 패배해 흥분한 콘트라다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이를 말리기 위해 경찰이 나서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마저 축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흑사병이 창궐해 미완성으로 남은 시에나 대성당

캄포 광장에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시에나의 두오모, 시에나 대성당은 12세기부터 200여 년에 걸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라순타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힌다.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이 장식된 대리석 바닥을 사뿐히 밟고 흰색, 분홍색, 회색의 대리석 줄무늬 모양이 화려한 성당 앞에 이른다. 성당 정면의 둥근 창을 감싸고 있는 40 성인의 모습과 그 아래 초록색 문 위에 걸려 있는 태양을 상징하는 조각이 인상적이다. 대성당의 종탑은 마치 스프라이트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디자인됐다. 흑백의 줄무늬는 시에나의 문장을 상징한다.


1339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세운다는 계획으로 남쪽에 본당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으나 흑사병이 창궐해 미완성으로 남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으로 만든 줄무늬 기둥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고, 짙고 푸른 천장에 금빛으로 수놓은 별들이 아름답다. 햇살이 투영돼 형형색색 빛을 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닥에 그려진 모자이크도 성당의 화려함을 더한다. 시에나는 깊이 숙성된 와인의 묵직함과 톡 쏘는 스파클링 와인의 청량함이 교차하는 오묘한 도시다.

시에나=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여행메모

시에나는 보통 피렌체에 머물면서 당일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서 시에나역까지 기차로 1시간30분(편도 8.7유로) 걸린다. 시에나역에서 구시가지까지는 오르막길이고 거리도 멀어 시내버스(승차권 1.5유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피렌체에서 버스를 타면 그람시 광장까지 바로 가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이 편하다. 버스로 1시간15분(8.5유로)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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